Jaguar XE 20d Portfolio

2016 Jaguar XE 20d

최근 이어지고 있는 광고에서 재규어는 악역을 자처하고 있다. 상당히 자극적이다. 그동안 재규어는 인지도는 높아도 흡인력은 부족했다. 그래서 자극적인 광고는 재규어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재규어는 새 모델 XE를 내놓으며 “나아가 세상의 모든 길을 지배하라!(원래는 ‘Go forth and rule the roads’다)”고 외친다. 대놓고 XE를 많이 팔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뒤집어 해석하면 지금까지 만든 차들은 많이 팔릴 차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재규어는 전통적으로 특유의 개성으로 인정받은 브랜드다. 세련된 스타일과 고급스러움, 스포티함을 고루 갖추었으면서 다른 럭셔리 브랜드보다 조금 낮은 값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매력이었다. 이제는 XE로 그런 노선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XE를 내세운 재규어의 도전은 야심의 크기만큼이나 위험도 크다. XE가 뛰어든 시장에는 이미 쟁쟁한 경쟁차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번 시승에 함께 나온 BMW 3 시리즈와 메르세데스-벤츠 C 클래스 외에 아우디 A4도 각자의 영역을 지키고 있고, 시야를 넓히면 렉서스 IS, 인피니티 Q50, 캐딜락 ATS 같은 모델도 있다. 그 중 독일 브랜드 프리미엄 세단들은 양적으로는 다른 브랜드와 뚜렷하게 구분될 정도로 큰 시장 몫을 차지하고 있다. XE가 경쟁상대로 그들을 지목한 것도 그들의 판매량에 욕심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2016 Jaguar XE 20d

재규어가 유독 XE로 욕심을 부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XE 자체의 판매도 중요하지만, XE로 재규어 브랜드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의 충성도를 이어나갈 XF와 XJ의 판매량에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XE는 재규어에게 ‘대량판매’라는 새 패러다임을 가져다줄 자질을 갖고 있을까? 국내에서는 9월부터 판매가 시작된 탓에 아직 시장반응을 뚜렷하게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출시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딜러에 따라 할인조건을 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 판매대수가 계획을 밑돌고 있는 듯하다. 출시 당시 재규어 코리아가 제시한 가격은 국내 동급 판매 상위권 모델인 3 시리즈와 C 클래스 사이여서, 지금의 실 구매가격은 3 시리즈 쪽에 좀 더 가까워졌다. 할인 판매가 앞으로 미칠 영향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차 자체를 들여다 보면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하다. 많이 팔리는 차에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기 마련이다. XE가 흔히 이야기하는 볼륨 모델이 되려면 그런 매력이 담겨 있어야 한다. 날렵하지만 화려하거나 과격하지 않은 스타일은 보수적인 고급스러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게 받아들여질만하다. 쐐기에 가까운 형태의 차체는 높이가 낮고 트렁크 부분 길이가 짧아 4도어 쿠페 스타일에 가깝다. 다만 비교적 젊은 연령대의 소비자를 끌어당기기에는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강렬함이 부족하다.

2016 Jaguar XE 20d

실내도 그렇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의 디자인에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내장재는 동급 다른 차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대시보드가 좌우 대칭인데도 앞좌석 공간은 운전자 중심으로 구성된 느낌이 뚜렷하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자극적이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다. 시승차는 중간급인 포트폴리오인데, 기능과 편의장비는 비교적 알차다. 주행 모드 선택이 가능하고 메리디안 오디오를 비롯해 멀티미디어 기능도 충실하게 갖췄다. 동급 다른 모델에도 있는 것이지만 뒷좌석용 공기배출구와 6:4 비율로 나누어 접히는 뒷좌석 등받이 등 실용성을 고려한 면도 눈에 뜨이고, 앞 유리 열선이나 트렁크 전동 개폐장치처럼 다른 차에는 없는 기능이 있는 것도 XE의 장점이다.

그러나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동급 베스트셀러와 다른 성격을 지닌 부분들이 하나둘씩 느껴진다. 가장 큰 차이는 실내공간 구성이다. 시트 굴곡은 몸을 잘 잡아주는 편이고 쿠션의 탄력이 적당해 편안하다. 그러나 시트 포지션이 비교적 낮은 편인데도 앞뒤 좌석 모두 머리 공간 여유가 크지 않다. 날렵한 스타일에 비스듬히 누운 유리의 영향이 크다. 특히 뒷좌석은 무릎이 답답하다. 대중성을 노려 지난 몇 세대에 걸쳐 꾸준히 뒷좌석 공간을 키운 경쟁 모델과는 구성 자체가 다르다. 공간구성에서만큼은 운전자 중심의 전통적 퍼스널 세단 개념에 충실한 셈이다.

2016 Jaguar XE 20d

주행감각에서는 재규어 특유의 섬세함과 세련미가 잘 살아 있다. 무엇보다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한 스티어링과 브레이크 감각은 스포티한 고급차를 몰고 있는 기분을 들게 한다. 운전자의 조작에 차분하고 고르게 반응하도록 튜닝하는 것은 재규어의 전통적 장기다. 승차감은 부드러움 속에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출렁일 정도로 허술하지 않도록 상하 움직임이 억제되어 있으면서 지나치게 탄탄하지도 않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날카롭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머리를 돌리고 차체 뒤쪽도 고분고분 잘 따른다. 180마력 43.9kg‧m의 성능을 내는 2.0리터 디젤 엔진도 비교적 고른 액셀러레이터 반응과 맞물려 차가 매끄럽게 움직이는 데 도움을 준다. 공회전 때 디젤 특유의 소음과 레이스 모드에서 정지가속할 때 잠깐 나타나는 지체현상을 빼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의 특성은 훌륭하다. 날이 선 부분이 없는 만큼 누가 몰아도 운전이 편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하체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잔진동이 주행감각의 매력을 희석시킨다. 고속에서도 차의 움직임은 안정되어 있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진동이 거슬린다. 동급 다른 차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불쾌함이어서, 좀 더 세심한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지금 상태에서도 불쾌함을 덜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차를 있는 힘껏 거칠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런 특성 역시 보편적인 소비자들에게 어울리지는 않는다.

2016 Jaguar XE 20d

여러 면에서 보편성을 추구한 흔적이 보이고 상품성도 잘 갖추려 애썼지만, XE는 공간구성 중심의 패키지에서만큼은 재규어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재규어의 오랜 팬이라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다른 브랜드 차에 익숙하고 보편적 용도에 걸맞은 차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아쉬울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길을 지배하기보다는 새롭게 재규어 팬덤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지배하기에 어울리는 차다. 그런 점에서 XE는 이 차급에서 보기 드문 니치 카이고, 보편성보다 개성이 더 강한 차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 XE가 시장에 준 가장 큰 영향이다.

(2015-12 / Motor Trend Korea)

Jason Ryu

제이슨류쩜넷 운영자, 메탈헤드 류청희입니다.

You may also like...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